안녕이라 그랬어 - 우리 모두 알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 것들

몇 달 전 꽤나 이슈가 됐던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라는 소설을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소설을 오랜만에 읽고 싶은데 요즘 어떤 소설이 인기가 있나 찾아보다가 발견했는데요, 이 기회로 김애란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여러 단편 소설들이 포함된 소설집입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각 소설 속에서 잘 표현됐다고 느꼈습니다. 각 소설별로 제가 생각하고 느낀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Book Cover

홈파티

성민은 아는 대표님 댁에서 열리는 홈파티에 이연을 초대해 데려갑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회에서 한자리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자리. 그들의 대화를 보면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고, 상대적으로 어려운 이연을 동정하는 투로 얘기합니다. 홈파티는 가진 자들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가난한 사람을 두고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 이연도 그들에게 그런 도구였지만, 마지막에 오대표의 잔을 깨뜨리며 오대표의 이면을 봅니다.

오대표의 얼굴에 잔을 잃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오늘 파티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정을 지은 까닭이었다.

아끼던 비싼 잔이 깨져서 오는 당혹감이 아니라, 그쯤은 별거 아니라며 넘기는 것에서 오는 우월감, 그 우월감으로부터 받는 만족감. 이연이 너무 미안해하며 사과하고, 그걸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오대표 본인을 예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연은 오대표에게 당황이 아니라 여유로 받아치며 예상치 못한 감정을 선사합니다.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요."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위치에 따라 은연중에 나오는 무시, 동정, 우월감 등의 미묘한 감정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숲속 작은 집

큰 감정적인 다이나믹이 없는 잔잔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역시 인간 내면의 아주 사소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건드립니다. 휴가차 떠난 숙소의 메이드의 행동의 변화로 인해 은주는 엄마를 떠올리고, 돈 앞에서의 인간의 욕망과 나약함까지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넉넉하지 않게 자라온 본인의 경험과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메이드의 감정과 상황을 추측하기도 하죠. 이야기의 마지막에 그 내막이 밝혀지는데, 지호와 은주는 허무함을 느끼며 마무리됩니다.

이 소설에도 계급 차이가 존재합니다. 은주와 메이드, 지호와 은주, 그리고 어쩌면 엄마까지. 계급 사이의 은밀하고 은근한 우월감과 무력감. 인간의 공동체 내에 불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을 잘 묘사했습니다.

좋은 이웃

한 신혼 부부가 인테리어 공사에 대한 양해를 구하러 다니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자가가 아닌 아파트에 살다가 집을 다시 구해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나”와는 달리, 자가인 것으로 보이는 신혼부부를 부러워하지만 한편으론 부모 돈일 거라며 시기합니다. 나에게는 아끼는 학생 “시우”가 있습니다. 시우는 장애가 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었죠. 그런 이유로 시우에게만큼은 다른 학생들보다 돈도 덜 받고 사명감을 지닌 채 가르칩니다. 어느 날 시우네 가족이 이사를 가야 한다고 좀 멀어지지만 수업을 계속 받을 수 있겠냐는 부탁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게 옆 동네 새로운 아파트에 자가로 이사하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는 이유 모를 허전한 마음을 느낍니다.

시우네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분명 좋은 소식인데, 그것도 내가 아끼는 학생의 일인데, 마음이 허전하고 휑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주인공은 아파트에 새로 이사를 온 신혼 부부를 보며 부러움과 시기를 느끼고, 시우네 가족을 보며 상대적 우월감을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자가가 없어 쫓겨나다시피 된 본인의 가족과는 달리, 시우네 가족이 자가를 마련해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절망감과 마땅히 그러는 게 맞다는 수긍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 하며 허무함을 느낍니다.

내가 연민을 가졌던, 나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보다 상황이 더 나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서 오는 절망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응원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느껴지는 부끄러움이 한 곳에 뒤엉켜 적잖이 괴로웠을 겁니다.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주인공의 뼈아픈 자각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높디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죠. 그럼에도 좋은 이웃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이기를 놓지 않는다면 사회가 조금이나마 온기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에서도 작가는 일상에서의 아주 흔하고도 내밀한 감정을 건드리며 저의 마음을 따갑게 헤집어 놓습니다. 나는 좋은 이웃이었던가.

이물감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기태가 그냥 넘겨도 되는데 넘기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철없어 보이기도 하는 행동들이 있죠. 그것은 안정적이지 못한 환경 탓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기태는 직장에서는 기성세대가 되어 가고 이혼했으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러 변화를 체감합니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상황이 달리 보이고, 생각과 감정이 달라집니다. 예전의 기태는 산뜻한 중년이 되고 싶었습니다.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 자신을 둘러싼 좌표는 그대로 남아있고 본인이라는 점만 이동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좌표도 같이 움직이고 다른 그래프와 충돌하고 찌그러지는 거죠.

잘 정리되고 흘러가야 할 기태의 감정들이 역류하는 이물감을 통해 인간의 상황과 변화에 따른 미묘한 감정과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레몬케이크

기진은 병원 때문에 서울에서 올라온 엄마 선주를 챙겨야 합니다. 그런데 기진은 오늘 자신이 운영하는 책방에서 저녁에 유명한 작가가 방문하는 중요한 행사가 잡혀 있죠. 원래 하던 일을 퇴사하고 여행 전문 책방을 운영해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책방을 운영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운영이 잘 안 됐던 터라, 이 행사를 좋은 기회로 삼고 싶어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엄마가 갑자기 올라오게 된 거죠.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밥을 먹고 빵집에 가면서도 계속해서 행사 생각과 걱정을 하게 됩니다. 겨우 엄마 일정을 다 소화시키고 버스를 태워 보냈는데 섭외한 작가로부터 문자를 받게 됩니다. 작가의 아버지가 운명하셨다는 부고를요. 그렇게 행사는 취소되고 기진은 혼자 책방에서 행사를 위해 준비했던 레몬케이크를 먹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나의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이야기 속에서 엄마 선주와 딸 기진 각자의 시선과 생각이 교차로 묘사됩니다.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상황을 겪었는지, 그래서 심리 상태가 어떤지와 같은 것들이요. 피해주기 싫어하고 표현을 해야 하는데 서툴기도 하며, 잘 아는 것 같은데 몰랐던 그런 모습들을 알게 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가족이기에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미안함과 죄책감, 동시에 찾아오는 책임감과 불편함에 대한 감정을 잘 보여줍니다.

엄마와 헤어지고 나니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비로소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안타까움과 미안함, 짜증과 홀가분함, 연민과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에 치이다 보면, 막상 중요한 게 무엇인지 놓치게 되기 쉽습니다. 그중엔 가족과의 관계도 있을 수 있죠. 워낙 가깝고 오래 봤기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행동하고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는 순간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칩니다. 때론 속으로 왜 저러는 걸까 생각하고 짜증 내거나 비난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기진과 선주와 같은 순간들이 있지는 않나요? "가족"이라는 관계에는 불가항력적인 인력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느끼곤 하는데요, 그 인력을 성가시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안녕이라 그랬어

헌수와 은미가 함께 ‘러브 허츠’라는 노래를 듣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팝송인데 은미가 ‘안녕’이라고 잘못 듣는 부분이 나옵니다. 사실은 '안녕'이 아니라 '암영(I'm young)'이라는 영어 가사였죠. 은미는 본인이 잘 모르는 낯선 말을 익숙한 말로 대체해 버립니다.

은미는 영어 공부를 위해 온라인에서 수업을 해주는 튜터 로버트와 주기적으로 대화합니다. 처음에는 수업에 필요한 대화만 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적인 호감이 쌓여 속 깊은 대화도 하게 됩니다. 서로 마음을 연 계기는 로버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은미가 진심으로 위로를 해준 사건입니다.

나는 뭐라 더 말을 못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은미가 그 '하나 마나 한 말'을 전한 후, 로버트는 은미에게 마음을 열고 속 얘기를 하게 됩니다. '하나 마나 한 말'이 소통을 시작하게 해준 셈이죠. 그 후로는 수업하면서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은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명절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팥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대화의 흥미와 구조를 위해 동지를 선택하고 팥죽이라고 답할 정도로요.

그렇게 로버트와 많이 가까워지며 수업을 하다가, 마지막 수업이 될 것 같다고 로버트에게 통보하게 됩니다. 둘은 서로 아쉬워하고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수업이 끝날 즈음 로버트가 은미를 부르고 마지막 말을 하려는데 시간이 종료되어 화면이 끊기고 이들의 대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의 소통의 부족을 얘기한다고 느꼈습니다. 동시에 소통의 소중함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대화와 오해, 이면의 뜻이 담긴 사건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뜻을 이해합니다. 소통이 어려워지는 순간 오해가 생깁니다. 이해를 잘못하면 바로잡기보단 내게 익숙한 것으로 치환해버리기도 합니다. 마치 은미가 '암영'을 '안녕'으로 바꿔버린 것처럼요.

하나 마나 한 말. 어쩌면 이런 사소한 말들로 소통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거죠.

소통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소통이 많은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빗방울처럼

지수는 은성빌라에 살고 있습니다. 수호와 결혼 후 투룸에서 살다가 2년 만에 방 3개짜리 신축 빌라로 이사한 건데요. 빌라에 살다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고 더 나은 집과 삶을 꿈꿨지만, 전세 사기로 인해 한순간에 힘든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당첨된 아파트도 포기하고 경매에 참여해 원래 살던 은성빌라를 낙찰받습니다. 수호는 은행 대출금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지수는 모든 것이 본인 탓 같습니다.

그때까지 백번도 더 한 생각을 한번 더 했다. '그때 내가 이 집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창밖의 초록을 그토록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우리가 이 집 말고 다른 집을 먼저 만났더라면. 그날 날씨가 그렇게 화창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지수는 너무 힘든 나머지 수호 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물이 새던 천장을 고치고 도배를 새로 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였죠. 도배가 끝나고 마지막 남은 그 선택을 하려던 순간 빗방울 같은 소리와 함께 수호가 하는 듯한 말을 듣습니다. 그러지 말고 살라는 말. 지수는 도배를 해준 여자가 한 말을 떠올립니다.

문득 아침에 여자가 안방 천장을 보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이라 한국의 그 어떤 행정 언어나 법률 언어보다 더 정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말.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지수는 본인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쩌면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요? 무슨 일이냐는, 괜찮냐는 말 한마디. 그저 사소해 보이는, 진심이 담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무리하며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감탄했습니다. 살면서 한번쯤은 해봤을 법한 생각, 느꼈을 법한 감정, 있었을 법한 상황들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이나 생각의 묘사를 굉장히 디테일하게 하는 것 같다고 느꼈거든요. 덕분에 그런 불편한 상황들에 대해서 다시금 돌이켜보고 곱씹어보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채 다 읽기 전에 김애란 작가의 다른 소설을 미리 사놓았는데요, 그 소설도 엄청 궁금해질 만큼 필력이 뛰어난 작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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